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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7일엔 한국에서 생에 첫 배낭여행을 온 용환이라는 만 19세 청년과 시암 파라곤에서 쇼핑을 하고 한국으로 가는 길을 배웅해 줬다.

벌써 대학 2학년인데도 아무 생각이 없는게 고민 이라며, 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은 술마시면서 해야하는데 넌 아직 술도 못마시는 나이이니, 내년에나 술마시면서 고민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택시 안에서, 또 쇼핑몰 안에서 용환이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대담을 나눴다.

그러나 역시, 이미 취직을 해버린 내가 용기를 북돋아 줄만한 얘기를 해준들 그의 입장에서는 성공한 자의 뻔한 성공담일 뿐일 듯 하여,

말하는 나 역시 조심스러워 졌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언제부터 운좋게 성공한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오만함이 충만한 문장이 되어버린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쫓아가본들 결국은 되돌아 나에게 닿게 된다.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나라고 지시하는 화살표들을 마주하는 순간 몰려오는 무기력함은 나를 자꾸만 좁은 구멍에 몰아 넣고, 

그렇게 나도 그들처럼 '어쩔수 없잖아'라는 그럴싸한 변명만 악취처럼 뿜어대는 인간이 되어간다.

그래도 한가지, 술도 못마시는 나이에 이곳에 나와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정말 부럽다고, 

그렇기에 벌써 다음 단계로 넘어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해줬다.

공항가는 미니밴을 타기전 잘가라는 인사를 해주려 했으나, 시간에 맞춰 게스트 하우스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가 떠난 뒤였다.


2.

저녁에는 태국 친구들을 만났다. Ploy와 전날 클럽에서 먼저 만났던 Pod 그리고 Ike, Jew 가 와주었다.

태국도 긴 연휴 기간이라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여행을 떠났다고 하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렇게 선뜻 나와 함께해주는 친구들이 참 고마웠다.

다만, 전날 불개미에게 물린 것과 게를 먹고 걸린 장염때문에 육체적 고통은 나를 너무도 괴롭혔다.

연신 포카리 스웨트만 마시며 등을 긁어댔다.

Ploy는 나와 처음 만났던 2011년에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암스퀘어에 빈티지 악세사리 샵을 운영하고 있고, 기회가 닿는대로 여행을 다니며 지내고 있다. 

이 친구들 중 유일한 여자이자 이성애자이다.

Pod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항상 미소를 띄고 있어서 언제나 편하게 느껴지는 친구다.

그의 직업은 사실 며칠이 더 지난뒤에야 알 수 있었는데, 그전엔 사무실 얘기가 있길래 회사에 다니는 줄로만 알았다.

알고보니 그 사무실은 자기 사무실이고, 몇해 전 'Posh' 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한다.

꽤나 유명한지 누구나 알법한 패션잡지에 상품이 소개되고, 모델도 유명 연예인으로 섭외한다고 한다.

Ike는 예나 지금이나 유독 나에게, 아니 모두에게 변태답게 행동하는 변태인데, 지금은 패션 티비 프로에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출연하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니 말끔하게 차려입고는 도도하게 행동 하던데,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왠 변태가 내 다리를 쓰다듬고 있다.

변태지만, 출라롱꼰 박사학위 과정 중에 있다. 대학교수인 남자친구도 있는데 얼마전 10주년을 맞이한듯 하다.

항상 유쾌해서 좋아하는 친구이다.

Jew는 트렌스젠더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11년에는 남자였는데 지금은 여자라고 한다. 

*정정한다, 아직 수술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을 알게된 엄청난 이야기가 있지만 수위가 높아 생략한다.

그래서 내가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고, 미안했다. 아직도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조금 까탈스러워 보이고 도도해 보인다. 그런면에서는 확실히 여성스럽다고 해야겠다.

현재 시암센터에서 드레스 샵을 운영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참으로 오랜만에 변태 같은 지저분한 농담을 하며,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어댔다

밤이 깊어가고 얘기가 오고가다 보니 내일이 내 생일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생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하다시피 도망해 왔는데 뜻하지 않게도 이곳에서 생일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 생일이고 연말이고 하니, 내일 시장에 가서 물고기를 산다음, Artist's House에 가서 방생해 주자고 한다.

Ike가 어찌나 우아하게 설명하던지 상상만으로도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것만 같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대단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3.

다음날 아침, 새로이 옮긴 싱글룸 게스트 하우스에서 넉넉히 일어나서는 샤워 후에 

등에 연고를 바르고, 버물리를 바르고 거리로 나섰다.

레인보우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고, 동대문 식당 맞은편 언제나 계시는 할머니(항상건강하시길)께 빨래를 맡기고, 밥을 먹었다. 

소이 람부뜨리에서 으레 찾아가던 길 모퉁이 포장마차에 들려서

돼지고기를 얹은 밥을 시켜 먹었다. 혼자일때 항상 찾는 곳이라 익숙하다.

Ike와 만나기로 한 2시가 되어 경찰서 앞으로 향했다. 곧이어 Ike 의 차가 나타났다.

차선과 운전석이 우리나라와 반대인것을 깜박하고 운전석 문을 열고 Ike 무릎에 앉을뻔 했다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순조로운 픽업이 이루어 졌다.

우리는 언제나 술에 취해있거나, 곧 취할 예정이거나, 술이 깨어가는 상황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렇게 맨 정신으로 날 밝은날 보자니 뭔가 어색하다. 

술과 담배와 지저분한 농담이 함께일 때 우리는 어두운 밤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술이 빠지고 햇볕이 강하니 어딘가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그러나 Ike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지저분한 농담을 던졌다.

그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는 드라큘라다.

Ike를 따라 옷감을 판매하는 백화점을 들렸고,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친구분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배가 아파서 죽을 먹으려 했지만, 메뉴에 없어서 오리 국수를 먹었다. 

담백하니 맛이 좋았지만 폭풍 설사가 걱정이라 양껏 먹진 못했다.

가게를 옮겨 조그만 옷가게에서 Pod이 합류 했다. 이런저런 일들을 마치고 드디어 시장으로 향했다.






4.

시장 입구에 도착하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동시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조 속 가득한 생선을 한가득 꺼내 도마위에 올려놓고, 날이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지만 내리치면 댕겅 목이 잘려나가는 

뭉툭한 칼로 생선을 손질하던 생선가게 주인에게서 네봉지 가득 물고기를 샀다.

각 봉지당 10키로쯤 되는 것 같았다. 

'이 많은 물고기를 전부? 그래, 이정도는 방생해줘야 복이 오겠지!'

우리는 죽기 바로 직전의 물고기들은 눈앞의 죽음 앞에서 구원하였다. 

윤회와 업보를 믿는 불교의 교리에 따른 행동이었고, 타국에서 직접적으로 생활 불교 양식을 경험하게되니

새삼 불교라는 종교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고, 식물의 양분이 되어 다시 동물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가 되는 것을 생각하다보면

문득 세상 만물의 '각기 다름'이 결국은 '모두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반야심경에 나오는'공즉시색 색즉시공'과 다름없는데,

'비어있는 것은 사실 채워져있고, 채워져 있는 것은 사실 비어있다'라는 말이 사실 따져보면 현대물리학에서 밝혀낸

물질(원자를 이루는 대부분의 공간은 빈공간이다)과 다를바 없다는 것에서 실로 붓다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선문답같은 붓다의 가르침이 사실상 진리와도 다름 없다는 것에서 오는 전율이 불교를 이토록 융성케 했던 것일까.

머리 아픈 얘기는 그만 해야겠다. 정리도 못하면서 말만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어느새 Artist's House 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강에 뿌려줄 사료를 한 포대 샀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20kg 정도되는 사료 포대를 산것이다.

물고기가 담긴 봉지를 들고 차례차례 방생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물고기들은 우리주변을 맴돌며 고개를 물밖으로 내밀었다.

봉지안에 갖혀 산소가 부족해서였겠지만, 나를 봐주는 것 같은 착각이 주는 그 나름대로의 뿌듯함을 느낄수 있었다.





이 때 소원을 빌어야 했는데, 난 항상 이런 중요한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질려버린다. 가까스로 뻔한 소원을 몇가지 되뇌었다.

방생을 마치고 사료를 뿌려 주기 시작했다. 한 포대가 꽤나 많다. 20kg 정도 되는 양을 바가지로 퍼서 뿌리려니 시간이 꽤 걸린다.

주다가, 주다가 좀 쉬면서 돌아보니 가게에서는 작은 버킷에 사료를 담아 20밧, 50밧 정도에 팔고있는게 보였다.




역시 한 포대를 사서 퍼주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 이정도는 퍼줘야 복이 오겠지!'





나른한 오후에 질감좋은 마룻 바닥에 앉아 사료를 푸고 있으려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 너희들 매 해마다 이렇게 물고기를 방생하고 복을 비는가 보네. 좋다.

- 응? 우리 한달에 한번씩 이렇게 해~. 그래야 많은 복은 받을 수 있지 않겠어~?

'그...래, 그 정도는 해야 복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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