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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

Episode 2 : 방생(放生) 1.27일엔 한국에서 생에 첫 배낭여행을 온 용환이라는 만 19세 청년과 시암 파라곤에서 쇼핑을 하고 한국으로 가는 길을 배웅해 줬다.벌써 대학 2학년인데도 아무 생각이 없는게 고민 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그런 고민은 술마시면서 해야하는데 넌 아직 술도 못마시는 나이이니, 내년에나 술마시면서 고민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었다.우리는 택시 안에서, 또 쇼핑몰 안에서 용환이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대담을 나눴다.그러나 역시, 이미 취직을 해버린 내가 용기를 북돋아 줄만한 얘기를 해준들 그의 입장에서는 성공한 자의 뻔한 성공담일 뿐일 듯 하여,말하는 나 역시 조심스러워 졌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언제부터 운좋게 성공한 자.. 더보기
Episode 1 : BANGKO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 1. 3년 만이다.비록 열흘이 채 되지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여행다운 여행은 실로 오랜만이다.다만, 너무 오랜만이어서인지 시작부터 참으로 엉망진창이다.우선은 아무래도 내 잘못이 제일 크다 하겠다.시간도 없는 주제에 소싯적 배낭여행의 향수에 젖에 '비행기는 무조건 싼걸로 예매' 하는 것이 미덕인냥덜컥 중국 천진을 경유하여 새벽에 방콕으로 도착하는 항공권을 예약해 버렸던 것이다.팀장님 앞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이번 휴가는 태국으로 열흘간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의 패기라면직항으로 예매할 수 도 있었지 않았는가!어쨌든 천진으로 날아 가기로 한다. 천진 공항에 닿으니 저녁이 다되었고, 밤 10시까지 4시간 가량 공항에서 기다려야만 했다.그것보다 왜,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비닐로 밀봉된 술이 환승시.. 더보기
Perth - 3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았던 초기에는 퍼스의 낮이 너무도 조용하게 대지를 달구어 놓는 것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분명 사람이 사는 동네인데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조용함인가. 초등학교 시절 낮에 잠시 큰일을 보러 집에 들릴 때 홀로 길을 걸으며 느꼈던 그 조용함. 학교를 오가는데 학생이 아무도 없다는 그 익숙한 배경 속 낯선 광경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내 왼편을 고요히 따르던 양지바른 담벼락과 함께 남아있다. 4월 퍼스의 밤은 언제나 여름의 바람과 빛깔과 내음과 울림으로 나를 편하게 만든다. 집 앞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굉음이 가볍게 날아들고 낮에 한껏 열을 받아 달궈진 땅에선 아직도 미열이 느껴진다. 인간이 대륙과 부벼대며 만들어내는 치찰음이 잦아들고, 하루 내 저 뜨겁던 태양이라.. 더보기
Perth - 2 2 낮이 되면 모두들 집을 비운다. 누군가는 일을 가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고, K양은 학교를 나간다. 내가 묵은 방 천장은 단열재없이 얇은 탓인지 해가 뜨고 채 얼마 지나지 않아 후끈해지는 열기에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대충 잠을 깨면 대충 밥을 먹고 대충 씻고 대충 옷을 갈아 입다보면 대충 한 낮이 된다. 40도를 웃도는 더위지만, 워낙 건조한 탓에 그늘 밑이라면 땀에 젖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다. A형은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분의 아들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챙겨 주었다. 힘 써서 공장에 이력서도 내 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주셨다. 그럼에도 일을 구하지 못하자 학원을 다녀보는게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었다. 왠지 다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 준다. 나는 그저 모든게 새롭고 신기했다. 버스를.. 더보기
Perth - 1 1 퍼스는 더운 도시이다. 내가 도착한 4월 초[각주:1], 곧 우기가 시작 될 테니 서둘러 오라는 A형의 조언이 무색하게도 퍼스의 4월 날씨는 화창함, 메마름, 더위로 그 넓디 넓은 대륙을 뒤덮고 있었다. A형의 도움을 받아 방도 아닌, 거실도 아닌 애매한 곳[각주:2]을 잠자리로 마련하게 되었고, 그 곳의 넓이는 호주 대륙의 광활함일까, 혼자 남게된 내가 느끼는 외로움일까 하는 고민 보다 과연 이 사람들과 같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첫날 밤을 보냈다. '이 사람들' 이란 정확히 말해서 당시 나보다 먼저 방을 잡고 지내던 사람들 세명과 주인네 자매[각주:3] 이렇게 다섯명을 말하는데, 가장 재밌는 사람은 단연 S형일 것이다. S형은 나보다 약 1달 앞서 이 집에 자리를 잡았다는데, 첫..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