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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Perth

Perth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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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되면 모두들 집을 비운다. 누군가는 일을 가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고, K양은 학교를 나간다. 

내가 묵은 방 천장은 단열재없이 얇은 탓인지 해가 뜨고 채 얼마 지나지 않아 후끈해지는 열기에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대충 잠을 깨면 대충 밥을 먹고 대충 씻고 대충 옷을 갈아 입다보면 대충 한 낮이 된다. 40도를 웃도는 더위지만, 워낙 건조한 탓에 그늘 밑이라면 땀에 젖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다. 

A형은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분의 아들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챙겨 주었다. 힘 써서 공장에 이력서도 내 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주셨다. 그럼에도 일을 구하지 못하자 학원을 다녀보는게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었다. 왠지 다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 준다.
나는 그저 모든게 새롭고 신기했다. 버스를 타고 트레인을 타고 시티에 나가는 것도, 마트에서 계산할때마다 동전을 일일이 확인해가며 돈을 맞춰 낼때도. 별 걱정이 없었다. 무언가 될 것 같았다. 확신은 없지만 불안도 없었다.

첫째주 주말에 기타모임을 나가려고 했다. 퍼스에 오기 전부터 눈여겨 봐온 동호회였다. 내 기타를 인천공항에서 기내에 맡아주지 못하겠다 하기에 포기했었다. 기타가 없으면 미친듯이 치고 싶다. 허나 있으면 안친다. 그래서 더욱 기타모임에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A형은 교회를 가자고 했다. 나는 약속이 있다고 했지만, 무슨 첫째주부터 그렇게 싸돌아다니냐고, 첫주니까 형이랑 함께하라고 하였다. 나는 종교가 없다고 했다. 허니 이번에 가보자고 한다.

사실 첫째주에 교회를 간건지, 기타모임을 간건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그러나 기타모임은 나의 퍼스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토요일 낮에 간단히 모임을 하고 헤어지려는데 내가 불쌍해 보였던지 나를 거두어 개인적 친분이 있던 사람의 생일파티에 데려가 주었다. 그곳은 훗날 내 베스트프렌드가 된 Jarred의 집이었는데 당시 기타모임 회원 누나와 사귀고 있었기에 기타모임 사람들 몇명이 초대 받았던 거였다. 파티에 가니 또 모든게 새로웠다. 집을 가득 채운 처음 보는 사람들 씨끄러운 음악.

물이 올랐고, 나는 제라드의 음악에서 노래를 골랐다. Flaming lips의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Pt. 1
그러자 제라드는 기타를 들고 오더니 내게 코드를 알려주고 같이 기타를 쳤다.
그 와중에 제라드는 여자친구에게 이 노래에 대해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가를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 누나는 그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응 그렇구나~ 라고 했겠지만,
제라드와 나는 기타에 열중했기 때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런저런 음악얘기가 오가고 노래가 바뀌는 사이 모두들 취했다.
귀여운 일본애가 어느 노래에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던 기억과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 기억.
나를 데려왔던 사람들도 떠나가고 나는 남기로 했다.

어느새 기억은 나와 S형, 제라드네 친구들만 테이블에 앉은 곳으로 바뀌었다.
뭐가 그렇게 신났던지 장난이 심한 하워드는 나를 놀려대고 나는 하워드의 수염을 놀려댔다.
S형은 구토를 하고 뻗었다.
다들 뻗었나 나만 뻗었나 모르겠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홀로 소파에 자고 있었다.

잠은 깼으나, 어떻게 해야하나 알수가 없었다. 그냥 집을 나가자니 길도 모르고. 인사는 하고 가야하나 그냥 가야하나.
청소까지 도와주고 가는게 나을까 아침은 부담스럽지만 주면 먹어야 하나.
이런저런 걱정 중에 나는 들었다.
2층에서 들려오는 괴성들. 샤워소리. 곧이어 누나가 내려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벌떡일어나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같이 길을 따라나섰다. 누나는 스쿠터를 타고 가기전에 나에게 버스타는 곳을 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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